
영화 이터널스는 히어로 장르의 틀을 벗어나, 신화와 인간성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탐구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능력과 불멸성을 갖춘 존재들이 지구의 역사를 지켜보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중심에는 ‘신적인 힘을 가진 존재도 인간처럼 흔들린다’는 메시지가 있다. 감독은 삼천 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이터널스가 겪는 혼란과 감정, 그리고 그들이 내리는 선택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들의 강력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신적인 힘을 가졌기에 더 외롭고, 불멸이기에 더 아프며, 목적이 뚜렷하기에 더 혼란스러운 존재들. 영화는 이러한 괴리 속에서 탄생하는 인간성과 신화적 숙명을 강렬하게 대비시키며 서사를 전개한다. 이터널스는 단순한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지구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게 된 존재들이다. 그들의 역할은 ‘관찰자이자 수호자’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되고, 결국 명령과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적 균열은 영화의 핵심이다. 인간을 구해야 하는 것은 이터널스가 가진 사명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이용해야 한다는 진실이 드러날 때, 그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이 혼란은 신화적 존재의 위엄이 아닌, 인간의 고뇌에 가깝다. 영화는 이 회의감과 분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며, 관객이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도록 유도한다.
신화적 존재의 감정, 인간성과의 충돌
이터널스는 신화적 이미지로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그들의 감정은 철저히 인간적이다. 천년 동안 인간을 지켜보며 살았던 그들은 더 이상 명령만 따르는 도구가 아니게 된다. 지구에서 보낸 시간이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어떤 이터널은 사랑을 경험했고, 어떤 이터널은 인간 사회에 깊숙이 녹아들었으며, 또 다른 이터널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해 고립되었다. 이러한 감정적 변화는 그들의 존재 목적과 충돌하며 서사의 긴장을 형성한다. 시르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존재다. 그녀는 인간의 삶과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지구가 단순히 임무 수행의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집’이라고 느낀다. 그녀의 이러한 감정은 명령에 충실한 이카리스와 대조되며, 두 존재의 갈등을 극대화한다. 이카리스는 목적과 임무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능력과 역할에 충실하며, 감정보다 사명을 선택한다. 이 대립은 인간성 대 신화적 의무라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드루익은 인간의 폭력을 보며 좌절하고,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모습에 분노한다. 그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선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그의 이상은 고귀하지만, 그 방식은 위험하다. 이는 영화가 인간과 신화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신적 능력을 가진 존재라도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터널스가 겪는 감정적 혼란은 시간의 무게를 반영한다. 불멸이라는 능력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고통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 인간이 반복하는 전쟁과 폭력, 그리고 지구의 수많은 변화를 지켜봐야 하는 책임감은 이터널스를 지치게 만든다. 영화는 불멸이 선물이 아니라 감정적 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과 달리 죽지 않기에, 이터널스는 고통과 상실을 끝없이 경험한다. 이 점에서 그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신화적 존재의 감정은 결국 인간성과 충돌한다. 이터널스는 자신들이 지키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고, 인간보다 더 깊이 고민하며, 인간보다 더 강렬한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적 서사는 이터널스를 단순한 신화적 캐릭터가 아닌, 감정의 무게를 짊어진 존재로 재해석한다. 영화는 ‘강함’보다 ‘약함’에 집중하며, 인간성의 가치를 신화적 틀 안에서 확장한다.
창조와 파괴, 목적의 혼란
이터널스는 자신들의 임무가 지구 보호라고 믿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지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보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태초를 탄생시키기 위한 도구였다. 인간 문명이 증가하고 에너지가 모일수록 셀레스티얼이 태어나는 과정이 완성되며, 지구는 결국 파멸하게 된다. 이 진실은 이터널스에게 깊은 혼란을 가져온다. 지켜야 할 대상이 사실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신념을 무너뜨린다. 영화의 갈등은 이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창조는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진실, 그리고 그 파괴를 위해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터널스에게 견딜 수 없는 모순이다. 이카리스처럼 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인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이터널은 인간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고민한다. 창조를 위한 파괴는 자연의 법칙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윤리적 질문이 남는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통해 인간뿐 아니라 신적인 존재도 ‘선택’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시르시와 일부 이터널은 지구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그들의 선택은 명령을 거스르는 일이자, 자신들을 만든 존재에게 반역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 선택은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다. 사랑과 연민, 그리고 공감. 이러한 감정은 창조주가 내려준 목적보다 더 강력한 힘이 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신화적 서사를 넘어 윤리적 서사로 확장된다. 존재의 목적을 정의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카리스는 끝까지 자신이 가진 목적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사랑하는 시르시를 바라보면서도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갈등한다. 그의 선택은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이다. 그는 잘못된 신념을 따랐기 때문에 괴롭고, 그 신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는다. 감독은 이카리스의 비극을 통해 ‘목적과 감정의 충돌’이 얼마나 큰 혼란을 가져오는지 보여준다. 이카리스는 신화적 인물이지만, 그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 목적이 분명할수록 선택은 무겁고, 감정은 흔들린다. 창조와 파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영화는 ‘목적의 재정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존재의 목적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터널스가 지구를 지키기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규정한 행동이다. 영화는 그 선택의 무게를 진지하게 다루며, 관객이 목적과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터널스 불멸 속의 고독, 인간다움의 발견
이터널스는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들이다.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들을 지치게 한 것은 전쟁이나 임무가 아니라 ‘고독’이다. 불멸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부담이 되고, 더 큰 상처가 된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감정을 마무리할 수 있지만, 불멸의 존재는 고통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영화는 이 ‘불멸의 고독’을 핵심 주제로 삼아, 신화적 존재의 인간성을 깊게 드러낸다. 시르시는 인간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그들과 연결되었다. 그녀는 불멸의 존재이지만, 인간처럼 사랑하고 상실을 경험한다. 그 감정이 그녀를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하게도 만든다. 사랑하는 존재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삶을 잃는 고통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이 상처는 그녀를 성장하게 한다. 불멸의 존재도 감정을 통해 변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스토스는 인간 문명의 발전을 돕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능력은 인간의 파괴적 본성과 결합되며 비극을 초래한다. 그는 스스로를 탓하고 인간에게서 멀어진다. 하지만 그는 결국 인간의 희망을 이해하며 다시 이터널스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그 과정은 불멸의 존재도 실수하며, 실수 속에서 다시 인간성을 배운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카리는 청각이 없지만 누구보다 세상을 깊이 느낀다. 그녀의 불멸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감각적 세계를 넓게 경험하게 만드는 도구다. 그녀는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세계를 느끼고, 시간을 견딘다. 불멸의 길을 지나는 동안 그녀는 혼자였지만, 이터널스와 함께하며 감정의 균형을 찾는다. 그 균형이 그녀의 인간성을 완성시킨다. 영화는 불멸을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감정적 짐으로 묘사하며, 불멸이 가진 고독을 통해 인간다움의 가치를 강조한다. 인간은 짧은 생을 살지만, 그 속에서 깊은 감정을 느끼고,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이터널스는 이러한 인간의 삶을 보며 배우고 성장한다. 불멸이 주지 못하는 감정의 선물이 바로 인간성이다. 이터널스는 신화적 존재와 인간 존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질문한다. 그들은 강하지만 약하고, 오래 살지만 고독하며, 목적을 가졌지만 감정으로 흔들린다. 이 모순 속에서 이터널스는 점점 인간다움을 깨닫는다. 영화는 신화와 인간성의 충돌을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으로 풀어내며, 영웅담이 아닌 존재의 서사로 완성된다. 관객은 그들의 선택을 따라가며 인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터널스는 신화 속에서 피어난,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다.